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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와 대응

한국 재생에너지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by 필리s 2025. 7. 17.

1. 목표와 현실의 괴리

재생에너지 보급률과 정책 이행 간의 간극

한국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전체 전력 생산의 21.6%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이행 속도는 매우 더디다. 2023년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전체 전력의 약 9%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는 OECD 평균은 물론이고 기후 선도국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다. 문제는 목표 설정은 야심찬 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 계획과 실행력에 있어 미흡하다는 점이다. 특히 발전 사업 인허가 절차의 복잡성, 지역사회 반발, 송배전망 연계 부족 등의 구조적 장애 요인이 방치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보급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 체계 전반과 사회적 합의 구조까지 포괄하는 복합적인 문제다. 목표와 현실 간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제도 개편과 행정 효율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2. 입지 갈등과 주민 수용성 부족

지역 사회와 재생에너지 설비의 충돌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둘러싼 주민 반발은 국내 정책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은 환경 훼손, 경관 피해, 건강 우려 등을 이유로 신규 발전시설 설치를 반대한다. 특히 육상 풍력의 경우 ‘난개발’ 우려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는 주민 참여 구조의 부재, 투명하지 못한 정보 제공, 불충분한 이익 공유 구조가 있다. 유럽처럼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주민이 직접 투자하거나 수익을 공유하는 구조가 아니라, 외부 민간 기업이 개발하고 주민은 피해만 떠안는 구조는 당연히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책 당국은 단순히 설비를 확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맞춤형 소통과 수익 공유 모델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

3. 송배전망 인프라의 낙후

전력계통 연계의 병목 현상

한국 재생에너지 확대가 현장에서 지체되는 또 다른 이유는 낙후된 전력계통 때문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입지 상 외곽·지방에 주로 설치되지만, 현재의 전력망은 중앙집중형 화력·원전 발전소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이로 인해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가 송전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를 ‘계통 제한’ 또는 ‘출력 제어’라 부른다. 실제로 제주도의 풍력 설비는 2020년 기준 약 30%의 출력이 계통 포화로 인해 차단된 바 있다. 이는 국가 전력망 운영의 유연성과 확장성 부족을 그대로 드러낸다. 장기적으로는 지역 분산형 전원 체계로의 전환과 함께 송배전망의 스마트화 및 확장 투자가 필수적이다. 전력망 인프라의 병목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아무리 재생에너지를 생산해도 실질적 전력 공급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한국 재생에너지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4. 시장 구조의 불균형과 민간 투자 위축

전력 시장 개방성과 사업 안정성 문제

한국의 전력 시장은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독점적 지위 아래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재생에너지 민간 사업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민간 사업자는 전력을 생산하더라도 한전과의 장기 계약 없이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워, 사업 안정성이 크게 저해된다. 특히 REC(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 가격의 급격한 변동성과 정책 변경의 불확실성은 투자 위축의 주요 요인이다. 안정적인 수익 모델이 확보되지 않으면 중소형 발전사업자는 시장 진입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미국, 독일 등은 전력 시장을 개방하고 민간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계약 안정성이나 가격 보장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 보장제도, 시장 투명성 확대, 거래 다변화를 통해 민간 투자의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5. 기술 개발과 산업 생태계의 불균형

한국 제조 역량과 글로벌 경쟁력의 간극

재생에너지 확대는 단순한 설비 설치를 넘어 국가 산업의 전환과 직결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등 핵심 기자재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내 산업 생태계는 글로벌 경쟁력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특히 중국이 태양광 시장에서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공급망을 장악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R&D 투자보다는 단기 수익 확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에 대한 전략적 투자, 중소기업 지원, 인력 양성 등을 통해 자립형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 보급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이루는 ‘그린 뉴딜형’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6. 정책 일관성과 장기 전략의 부재

정권 변화와 재생에너지 정책의 진폭

한국 재생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권에 따라 방향성과 강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 정권에서 태양광 보급이 급격히 확대되었다가, 다음 정권에서는 환경 규제 강화, 예산 축소 등의 이유로 해당 사업이 위축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사업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투자자, 해외 기업 모두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주는 요인이 된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수십 년에 걸친 장기 전략이 필요한 분야다. 따라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는 초당적 합의와 연속성 있는 정책 프레임이 절실하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국가의 비전과 방향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책 일관성과 장기 비전 없이는 2050 탄소중립 목표는 실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