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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와 대응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 정책,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

by 필리s 2025. 7. 17.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 정책,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

1. 탄소국경세(CBAM)란 무엇인가: EU의 기후 대응과 무역 규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탄소 집약도가 높은 제품에 대해 수입 시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의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이 정책을 공식 제안했고, 2023년 10월부터 전환 기간을 거쳐 2026년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EU 내 기업들은 이미 EU 배출권 거래제(ETS) 하에서 온실가스 배출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해외 수입 제품에는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탄소 누출(carbon leakage) 문제가 발생해왔다. CBAM은 이러한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고, 동시에 기후 위기 대응을 국제 공급망 차원으로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다. 즉, 수입품이 유럽 기업과 동일한 환경 규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차이에 대해 금전적 부담을 지게 함으로써 무역과 기후 정책을 통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 적용 품목과 제도 구조: 산업별 영향 차별화

CBAM은 초기에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탄소 배출량이 높은 6개 품목에 적용된다. 이들 품목은 탄소 집약도가 높아 생산 시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되며, 국제 무역 의존도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환 기간인 2023년~2025년 동안에는 수입업체가 제품 생산 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보고만 하면 되지만, 202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탄소배출 인증서 구입 의무가 생긴다. 이는 EU 내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수입품에도 적용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점은 CBAM이 단순한 관세가 아니라 환경 정책의 확장된 형태라는 점이다. 향후 적용 대상이 섬유, 자동차, 화학제품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커지면서 다양한 산업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개발도상국과 중간소득국가의 수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비용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3. CBAM의 글로벌 경제 파급력: 수출국의 구조 전환 압박

EU는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이며, CBAM은 이 거대한 시장에 접근하고자 하는 국가들에 사실상 기후 기준을 강제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CBAM의 도입은 전 세계 수출국들에게 자국 내 온실가스 배출 관리 시스템 강화, 친환경 기술 투자, 산업 전환 가속화를 압박하게 된다. 특히 한국, 중국, 인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EU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수출 품목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세계은행은 CBAM이 전 세계 무역에 구조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으며, 기후 정책을 따르지 않는 국가에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 차원을 넘어, 무역 질서의 재편과 공급망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CBAM은 글로벌 경제 정책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4. 환경정책과 보호무역주의 사이의 경계

CBAM은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환경정책과 보호무역주의의 경계를 둘러싼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일부 국가는 EU의 정책이 환경 기준을 빌미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 규정과의 정합성 문제가 대두되며, 국제 사회에서 법적 분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CBAM이 실제로 탄소 감축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효성 문제도 존재한다. 탄소비용을 수입업자에게 전가한다고 해서, 생산국이 직접 감축 조치를 취하는 구조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CBAM이 국제 공조보다는 기후 규제의 일방적 강요로 비춰질 경우, 오히려 글로벌 기후 협력의 장기적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점에서 EU는 개도국에 대한 기술·재정 지원 확대, 협의 기반 확대가 병행되어야 CBAM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5. 미래 전망과 한국의 대응 전략

CBAM의 도입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 규제가 무역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제 기업들은 단순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탄소배출관리 및 ESG 요소를 경쟁력으로 갖춰야 하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한국은 EU의 주요 수출국 중 하나로서, 철강·알루미늄 등 직접 적용 품목뿐 아니라 잠재적 확대 품목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는 탄소정보 공시체계 강화, 배출권 거래제 정비, 저탄소 기술 개발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시에 CBAM을 기회로 삼아 저탄소 산업 전환, 친환경 수출 전략, 해외 탄소 감축 협력(Mitigation Partnership) 등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CBAM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자, 국가경쟁력과 산업구조 재편을 동시에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