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개념과 원리
탄소배출권 거래제(Emission Trading System, ETS)는 시장 원리를 이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대표적인 기후 정책 수단이다. 이 제도는 정부가 국가 전체 또는 특정 산업군에 대해 배출할 수 있는 탄소 총량(cap) 을 정하고, 이를 기업별로 배출권(allowance) 형태로 할당한 후, 기업 간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허용한다. 이를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일수록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인 구조를 형성하며, 반대로 초과 배출 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의 친환경 경영 전환을 촉진한다. ETS는 ‘오염자 부담 원칙’에 기반한 대표적인 시장 기반 환경 정책이며, 정부의 규제 방식보다 유연성과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A기업이 할당된 배출량보다 적게 배출하면 남은 배출권을 B기업에 판매할 수 있고, B기업은 이를 구매함으로써 과태료나 생산 제한 없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러한 거래를 통해 사회 전체적으로 저비용의 감축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ETS의 가장 큰 장점이다.
2. 유럽연합 탄소시장: 세계 최초의 ETS와 그 진화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EU ETS)는 세계 최초이자 가장 규모가 큰 탄소 거래 시장이다. 2005년 시행된 이후, 현재는 EU 내 27개국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리히텐슈타인이 참여하고 있으며, 총 10,000개 이상의 대형 온실가스 배출 기업이 포함돼 있다. EU ETS는 전력, 철강, 시멘트, 항공 등 탄소 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배출권을 거래하며, 매년 배출 총량을 줄여 나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초기에는 과도한 배출권 할당으로 인해 탄소 가격이 급락하고, 감축 효과도 미미했지만, 2013년부터 배출권 유상 경매 확대, 시장 안정화 매커니즘(MSR) 도입 등을 통해 실효성을 크게 강화했다. 2023년부터는 해운업까지 ETS 적용이 확대되었으며, 2026년부터는 건물·수송 부문에도 별도 거래제(ETS2) 가 시행될 예정이다. EU ETS는 시장 설계와 정책 개선의 대표 사례로 꼽히며, 전 세계 탄소시장 구축에 있어 중요한 참고 모델로 기능하고 있다.
3. 중국과 한국: 아시아 주요국의 ETS 도입과 특징
중국은 2021년 정식으로 전국 단위의 ETS를 출범시켰다.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이전까지 8개 지역에서 시범 거래제를 운영했으며, 이를 토대로 전력 산업을 중심으로 ETS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는 약 2,000개 이상의 발전 기업이 거래 대상이며, 탄소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점진적 확대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 ETS의 특징은 배출권 할당 기준이 절대량(cap) 이 아닌 배출 강도(intensity)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는 에너지 효율을 중심으로 기업을 평가하며, 향후 철강, 시멘트 등 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한편 한국은 2015년부터 ETS를 도입했으며, 아시아 최초로 의무 참여형 탄소시장을 구축한 국가다. 제1~3차 계획기간을 거치며 제도 안정화를 추진했고, 2021년부터는 전력·산업·건물 부문 약 70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ETS의 장점은 고도화된 감시 체계와 배출량 검증 시스템이며, K-ETS는 탄소중립 2050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량과 시장 유동성이 낮고, 탄소 가격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한국과 중국 모두 ETS를 통해 국제 기준을 맞추고 있으며, 탄소국경세(CBAM) 대응 수단으로도 ETS가 핵심 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4. 탄소시장 확대와 국제 연결의 미래 가능성
ETS는 개별 국가 또는 지역의 제도로 운영되지만, 국제 탄소시장 연계(ETS linkage) 를 통해 글로벌 감축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유럽연합은 스위스와 ETS를 연계하였고,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도 거래제 연동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 탄소상쇄제도(Article 6.2 of Paris Agreement) 가 본격화되면서, 국경 간 배출권 거래와 탄소 크레딧 수입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특히 개발도상국의 감축 프로젝트에 선진국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로, 글로벌 감축 노력의 새로운 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제도 간 배출권 기준, 검증 방식, 탄소 회계 기준의 차이로 인해 연계 시의 복잡성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탄소 가격의 급변, 투기성 거래, 환경적 무결성(EI) 훼손 등 부작용 방지를 위한 철저한 규제와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ETS는 이제 단순한 국내 정책이 아닌 국제 기후 외교와 무역의 핵심 도구로 진화하고 있으며, 국가 간 협력이 제도 성공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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