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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와 대응

기후위기 대응에서의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갈등

by 필리s 2025. 7. 17.

1. 역사적 책임 논쟁: 선진국의 과거와 개발도상국의 현재

기후위기 대응에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 갈등의 가장 본질적인 출발점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 문제다. 산업혁명 이후 수 세기 동안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선진국들은 대부분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변화를 유발해왔다. 특히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은 20세기 내내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화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산업화가 늦었거나 아직 진행 중이며, 경제 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기후위기에 책임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축 의무를 동일하게 부과받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즉 “먼저 오염시킨 자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는 국제 기후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측의 일관된 입장이다.

2. 공평성 vs. 실효성: 기후 정의를 둘러싼 정책 충돌

기후위기 대응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글로벌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이 필수적이지만,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공평성(equity) 문제가 등장한다. 선진국은 감축 여력이 크고, 기술 및 자본의 보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다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에너지, 인프라, 산업 구조 등이 취약하여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의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은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이라는 원칙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감축 목표 설정과 적응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며,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위기 앞에서 모두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처럼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둘러싼 정책적 충돌은 매년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서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다.

3. 기후 재정 지원 약속과 실질 이행의 괴리

선진국은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의(COP15)에서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 규모의 기후 재정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감축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 적응, 재해 복구, 기술 이전 등을 포괄하는 중요한 조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약속은 재정 이행의 투명성과 속도 면에서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기금 조성 규모는 목표에 미달했고, 지원 방식도 대출 중심이거나 민간 자본을 포함하는 방식이어서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혜택이 제한적이었다. 또한 자금의 배분 방식이 불투명하고, 지원 조건이 까다롭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개발도상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약속은 했지만 책임은 회피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이는 국제 협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후 재정은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신뢰 회복과 실질적인 공동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라는 점에서, 조속한 이행과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

기후위기 대응에서의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갈등

4. 탄소 국경세와 무역 갈등: 제3세계의 새로운 위협

최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탄소 국경조정제도(CBAM)**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다. 이 제도는 수입 제품에 대해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것으로,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고 전 세계적으로 탄소 감축을 유도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이 제도를 사실상 비관세 장벽이며 기후 보호를 명분으로 한 보호무역주의라고 비판한다. 생산 비용이 낮고 기술력이 제한된 개발도상국 수출업체들은 탄소 정보 제출이나 감축 인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는 수출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탄소 집약적 산업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CBAM 도입으로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제도는 기후 대응을 넘어, 기후를 무역 정책의 도구로 전환시키는 사례로 해석되며,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 무역 갈등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5. 공존을 위한 해법: 신뢰 구축과 실질적 기술 협력

기후위기 대응에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지속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동시에 협력이 없다면 실질적인 기후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의 회복이다. 선진국은 실질적인 기후 재정 이행과 투명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개발도상국이 자립적으로 탄소 감축에 나설 수 있도록 기술 이전과 인프라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 반대로 개발도상국도 자신들의 현실을 고려하되, 장기적 관점에서의 감축 로드맵 제시와 제도적 투명성 강화를 통해 국제 사회의 신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후 대응은 전 지구적 공동 과제이며, 어느 일방의 희생이나 요구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기후 정의를 실현하면서도 실질적인 감축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균형 있는 제도 설계와 거버넌스 구축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도전에 대해 진정한 글로벌 연대가 가능해진다.